조선시대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요다음 토요일은
세계 만국이 이날을
일 년 중에 제일가는 명절로 여기며
모두 일을 멈추고
온종일 쉰다고 하니
우리 신문도 그날은 출근 아니할 터이요.
이십팔 일에 다시 출판할 터이니 그리들 아시오.
[ 독립신문 ] 1897년 12월 23일
음력을 쇠던 조선인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던 날, 동지
19세기 후반, 양력의 도입과 함께
동지를 대신해
새롭게 등장한 연말연시 풍경.
크리스마스 전날, 왕비(명성왕후)는
우리의 성대한 축제와 그 기원, 의미,
그리고 어떻게 거행하는지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크리스마스 직후에 나는 왕실을 위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LH언더우드 [ 상투의 나라 ]
크리스마스
저녁 일곱 시에
배재학당 회당 앞에 등불 수백 개를 켰는데
그중 제일 큰 십자 등 한 개를 만들어
금색으로 네 글자를 써서...
기쁜 날을 표 하니라
[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 1897년 12월 29일
광조동방
빛이 동쪽 나라에 비치다.
음력 4월 초파일 연등을 달던
한국의 전통
한국의 전통이 서양의 종교와 만나 만들어진
조선만의 크리스마스 풍경.
아주 어린 아이들은 석판과
종이 껍질이 입혀진 석필을 주었고
여성들이 선물 봉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거기에는 땅콩, 일본 사탕, 일본 과자 두개,
오렌지 하나가 들어있었다
[ 리 레이 중국 화동사범대학교 교수 ]
남녀 소학교 학도들을 위하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나뭇가지마다 과자봉지를 걸고
예배를 본 후에
차례대로 나와 선물을 받아갔다
[ 예수교신보 ] 190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기독교라는 낯선 종교를
조선에 소개할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다.
그런데
[ 조선일보 ] 1936년 12월 25일
월급쟁이들 헛바람 내는
토산(한국만의) 크리스마스이브
회비 1월 50전
요리 두 가지, 술 한병 증정
오십명의 미녀가 서비스
이것은 한 카페의 크리스마스 파티 광고다.
1930년대 모던의 열풍이 불면서
급속하게 변화한 크리스마스.
[매일신보 ] 1936년 12월 25일
간악한 상인들이
연말 보너스 덕분에 조금 무거워진
샐러리맨의 주머니를 노리는
상책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서울 여성층에
또 하나의 석가탄신일이 되었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가
쇼핑을 위한 또 하나의 핑계거리이자
기회라는 사실이다.
[ 윤치호 일기 ] 1933년 12월 24일
개신교의 유입과 함께
조선에 소개된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연말을 맞아 불야성을 이루는
소비 축제로 변모했고
오늘날의 연말연시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출처 : 역사채널e
'다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 주민등록증 호패 _ 누구를 위한 것이였나? (0) | 2018.11.29 |
---|---|
조선시대 오형 _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라 나뉜 형벌 (0) | 2018.11.28 |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 (0) | 2018.11.27 |
조선시대 여성의 재산상속 (0) | 2018.11.26 |
국가의 철처한 관리를 받아야 했던 조선시대 광대 (0) | 2018.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