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서 모내기를 금한 사연
조선시대에도 모내기를 금한 사연
도대체 왜?
매년 여름이 길어지는 달 (음력4월 )에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모내기
그러나,
이앙(모내기)은 매우 위험한 재배법이다.
[ 농사직설 1429년 ]
조선초기의 대표적 농업서적
[ 농사직설] 에서 경고하고
농사를 모두 잃게 될 것이니
내년부터는 이앙(모내기)을 일체 금하나
[조선왕조실록] 1414년(태종14년) 6월 11일
모내기는
조선 초부터 금지의 대상이었다.
농업국가였던 조선의
대표적 두가지 농사법
직파법은
무질서하게 자라 김매기가 어려워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4월 파종부터 10월 수확까지 1년 1회 경작이 가능했다.
반면 이앙법은
가지런한 모심기로 김매기가 쉬어
약 75%의 노동력을 절감시키고
이앙은 봄보리를 갈고 물을 대어 모내기를 해서
벼를 수학하니 1년에 두번 농사지음이 이롭다
임억령의 문집 [ 석천유집 ]
매년 5월 보리 수확직후,
같은 땅에 미리 모판에 키워 둔 벼를 심는
이모작 재배가 가능했다.
그 결과, 단위면적당 토지생산량이
2배 이상에 이르니
당시 조선의 이앙법은
획기적인 신 농사기술이었다.
하지만,
이앙법은 물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는
매우 위험한 재배법이다.
[ 농사직설, 종도조 ] 1429년
충분한 물이 필요한 농사법인
모내기는 주로 음력 5월에 실시.
5월은 봄가뭄과 겹치는 시기로
비를 기다리다 보내기 때를 놓치기일쑤였고
수리시설 부족으로 물 관리가 안 되니
작년에 기후가 고르지 못해 이앙을 못하게 되자
백성들이 굶주림 속에서 보내었는데,
올해도 이앙을 못하게 되어 굶주림은 계속 되었다.
[ 동문선 ]
이앙에 따른 흉작은 나라의 골칫거리로
끊임없는 금령의 대상이었다.
이앙은 제때에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전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를 금지시킬방도가 없겠는가?
관개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이앙을 하지 못하게
각별히 경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승정원일기 ] 1704년(숙종30년) 8월 26일
이앙법을 금지한 또다른 이유는
쉬운 제초에 따른 노동의 감소는
이를 담당했던 양민의 몰락을 야기하고
당시 세금 부과 대상인 양민의 몰락은
국가 재정의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발발.
정보는 황폐화된 농업생산의 재건을 위해
높은 생산력의 모내기 통제를 완화.
그 결과
( 조선후기) 각 지방에서 모내기를 실시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이미 풍속으로 이루어져 있따
[ 증보문헌비고 ] 권147(영조 연간)
본격적인 이앙법의 시행은
농기구 및 수리시설 증축 등
관련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을 이끌고
동시에 대규모 농사경영을 하는 만석꾼과 같은
' 경영형 부농층 ' 을 새로이 등장시킨다.
선진농법이었음에도 조선에서 배척당했던
모내기는
조선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으로
오늘날 대표적인 벼농사법으로 남아 있다.
출처 : 역사채널e